01프롤로그 : 매너가 골퍼를 만든다? 매너는 사람을 가린다
영국의 정통 클래식 골프 매거진을 들춰보거나, 전설적인 골퍼들의 아포리즘(명언)을 읽다 보면 귀가 따갑도록 등장하는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골프는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이며, 그렇기에 오직 플레이어의 '정직'과 '매너'에 의해 유지되는 고결한 게임이다"라는 격언이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신사적인 말이다. 하지만 이 멋진 말을 품고 대한민국 골프장, 특히 주말 오전의 경기권 회원제 구장 페어웨이에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는 처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대한민국 필드 위에서 목격되는 매너는 종종 '신사의 품격'이 아니라 '계급의 횡포'로 변질된다.
그 횡포의 최전선에는 일명 '틀딱 싱글'이라 불리는 일부 무개념 시니어 골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이가 벼슬이고, 수십 년 전 산 회원권이 훈장이며, 싱글 타수(70대 타수)를 친다는 구력이 곧 법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카트를 타고 필드를 도는 내내, 그리고 라운딩이 끝나고 사우나에서 탕에 몸을 담글 때까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불쾌감을 전염시키는 움직이는 '민폐 폭탄'과 같다.
대기업 장비 광고와 골프장 제휴 프로모션으로 연명하는 주류 골프 매체들은 이들의 행태를 '시니어 골퍼들의 열정과 엄격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로 미화하곤 한다. 그 꼰대들이 바로 골프장의 VIP 회원권 소지자이자, 매달 수백만 원씩 지출하는 주요 소비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골프 문화의 고질적인 악습과 꼴불견 인간 군상을 가감 없이 까발리는 Club14는 이 지점에서 타협하지 않는다. 오늘 이 글은 앞 팀의 뒤통수를 향해 드라이버를 날려대고, 캐디를 아랫사람 부리듯 하며, 본인의 낡은 상식을 강요하는 일부 시니어 골퍼들의 민폐 행동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사회적 저격 에세이다.
02"비키라고 해!" : 앞 팀의 뒤통수를 겨냥하는 드라이버 샷
이들이 필드 위에서 부리는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빌런 짓은 바로 '진행 독촉'과 '안전 불감증'이다.
일부 시니어 싱글 골퍼들은 자신이 골프장을 전세 낸 줄 착각한다. 앞 팀에 조금이라도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골린이(초보 골퍼)들이 섞여 있거나 진행이 미세하게 지체되면, 이들의 카트 안은 순식간에 짜증과 욕설로 가득 찬다.
캐디에게 리모컨을 뺏다시피 하며 카트를 바짝 붙이게 만드는 것은 약과다. 앞 팀이 세컨드 샷을 마치고 채 그린에 도달하기도 전에, 티잉 그라운드 위에서 연습 스윙을 거칠게 하며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가장 선을 넘는 행위는 앞 팀이 분명히 사정거리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샷을 날려버리는 행동이다. 낙하지점 근처에서 공이 떨어지는 소리(일명 '포어' 소리)가 들리면 앞 팀 플레이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어이! 안 맞았잖아! 좀 빨리빨리 다녀!익명의 시니어 골퍼
화가 난 앞 팀이 뒤를 돌아보면, 이들은 사과는커녕 멀리서 손을 대충 흔들며 이렇게 되레 고함을 지른다. 조상님이 회원권을 사준 것도 아닐 텐데, 단지 회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권리가 생겼다고 믿는 기묘한 특권 의식이다. 이들에게 골프의 본질인 '동반자와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미 낡은 교과서의 문구일 뿐이다.
03캐디는 하인이 아니다 : 갑질로 완성하는 꼰대질
이들의 두 번째 시그니처 행동 패턴은 코디네이터이자 안전 요원인 캐디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클럽하우스 라커룸이나 그늘집에서 동년배 꼰대들끼리 모여 앉아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캐디를 부르는 칭호부터 가관이다. "오늘 우리 조 배정된 '애'가 말이야", "그 언니 일 되게 못 하더라고"라며 초면인 캐디를 단숨에 아랫사람 취급한다.
필드에 나가면 갑질은 더욱 정교해진다. 공이 러프나 숲속으로 들어가면 본인이 직접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캐디를 윽박지른다. "야, 공 똑바로 안 봐? 내 공 어디 갔어?" 공을 찾지 못하면 그날 라운딩의 스코어 미스는 전부 캐디의 리딩 탓이 된다.
그린 위에서는 가관의 극치를 달린다. 본인이 마크를 하고 라이(잔디의 결)를 읽는 것이 골프의 기본이거늘, 퍼터를 들고 가만히 서서 캐디가 공을 닦아 대령하고 라이까지 완벽하게 놓아주기를 기다린다. 퍼팅이 홀컵을 빗나가면 "너 아까 슬라이스 라이라며! 똑바로 안 봐?"라며 캐디에게 화풀이를 시전한다.
그러면서도 라운딩이 끝나고 캐디피를 정산할 때는 돈 몇만 원 아까워하며 "오늘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어"라며 팁은커녕 굳은 표정으로 백을 싣는다. 타인에게 대접은 황제처럼 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본인이 지불해야 할 존중과 대가는 철저히 아끼는 K-꼰대 골퍼들의 전형적인 이중성이다.
04사우나와 라커룸 : 옷을 벗어도 벗겨지지 않는 추태
이들의 꼴불견 매너는 18홀 라운딩이 끝나고 옷을 벗는 라커룸과 사우나(스웨트룸)로 그대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정상적인 골퍼들이 조용히 피로를 풀고 정돈하는 공간이, 이들에게는 전방에서의 활약(?)을 부풀려 과시하는 마지막 확성기 무대가 된다.
사우나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앉아, 온 사우나가 떠나가라 고성방가로 본인의 플레이를 복기한다.
어이 김 사장, 아까 14번 홀에서 내 드라이버 250미터 나간 거 봤지? 그게 바로 드로우 손맛이야!익명의 시니어 골퍼
주변 사람들이 찌푸린 얼굴로 쳐다봐도 이들의 레이더에는 오직 본인의 영웅담만 보일 뿐이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건 사우나 에티켓의 부재다. 샤워실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거나, 탕에 들어가기 전 몸을 제대로 씻지 않고 땀에 젖은 채 그대로 온탕으로 직행하는 시니어들을 목격하는 건 한국 골프장 사우나의 흔한 비극이다.
파우더룸 공간으로 나오면 추태는 정점을 찍는다. 선풍기 바람 앞에 서서 온몸의 물기를 말리는 것은 물론, 골프장이 공용으로 비치해 둔 바디로션과 스킨을 온몸에 과도하게 처바른다. 심지어 개인 소유가 아닌 공용 수건으로 바닥의 물기를 발로 문질러 닦거나, 머리 빗는 빗으로 온몸의 털을 정리하는 기행을 일삼기도 한다.
아무리 사회에서 회장님, 사장님 소리를 듣고 수억 원짜리 회원권을 가졌을지언정, 옷을 벗어던진 샤워실 안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민낯은 처참할 정도로 저급하다.
05에필로그 : 낡은 영광은 필드 뒤로 묻어두기를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었다. 이제 필드는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며, 수많은 젊은 골퍼들과 여성 골퍼들이 자신만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필드 위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시니어 골퍼들은 수십 년 전, 골프가 소수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의 '제왕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구력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존경받아야 할 일이지 권력을 휘두를 무기가 아니다. 진정한 '싱글 골퍼'의 품격은 스코어카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앞 팀이 밀릴 때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는 아량과 캐디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사우나를 나설 때 뒷사람을 위해 머문 자리를 정돈하는 뒷모습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만약 이 글을 읽으며 "이거 내 얘기 아닌가?" 하고 가슴 한구석이 뜨끔한 시니어 골퍼가 있다면, 다음 라운딩부터는 부디 본인의 회원권 번호보다 본인의 매너 지수를 먼저 점검해 보길 바란다. 조상님이 대신 사준 매너가 아니라면 말이다.
[GOLF ROOM ESSAY]의 첫 번째 매콤한 고발은 여기까지다. Club14는 다음 호에서 [Editor's Choice]의 가장 핫한 주제로 돌아온다 — SNS 피드 위 화려함 속에 가려진 스폰서와 인플루언서들의 기묘한 역학 관계를 파헤친 이야기를 기대해 달라.

